선배, 저 개발하지 말라고 해줘서 너무 고마워요

선배, 저 개발하지 말라고 해줘서 너무 고마워요

“선배, 저 개발하지 말라고 해줘서 너무 고마워요!”

얼마 전, 한국에서 함께 일하던 후배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임원으로 승진했다는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그 친구가 신입이었을 때 제가 사수를 맡았는데, 개발에는 소질이 없는 것 같다고 직언을 해준 적이 있습니다. 요즘이야 멘토링도 하고 그래서 조금 나아졌지만, 당시에 저는 돌려서 말하는 방법을 잘 몰랐습니다.

저의 묵직한 돌직구를 후배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더라고요. 안 그래도 본인은 개발이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제 말이 계기가 되어 개발자로서의 커리어에 대한 미련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우리가 다니던 곳은 대기업이었고, 어차피 오랫동안 개발만 하기는 어려운 환경이었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엔지니어링을 고집하기보다는 매니징 쪽으로 커리어를 전환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전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후배는 관리 업무를 맡은 뒤에야 비로소 개발할 때는 느끼지 못했던 재미와 보람을 느꼈다고 합니다. 사람을 이끌고, 조직을 운영하고, 팀의 성과를 만들어가는 일이 찰떡이었던 거죠. 관리 능력을 인정받아 동기보다 빠르게 승진했습니다.

반면에 저는 개발자가 천직인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개발이 재밌었습니다. 그런데 대기업에서 한 5년 정도 되니 주변에서 계속 개발 실무를 그만두라는 압박이 들어오더군요. 프로젝트 관리나 협력업체 관리 같은 일을 해야 조직에서 클 수 있다는 조언들이었습니다. 동기들도 하나둘씩 관리자가 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현실을 받아들이고 매니저 역할에 도전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정말 적성에 맞지 않더군요. 여기저기 회의에 끌려 다니다 보면 하루가 끝났고, 개발할 때 느끼던 성취감이 없었고 학습 욕구도 사라졌습니다. 원치 않게 윗분들의 사내 정치에 휘말려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습니다.

퇴근 후에는 본능처럼 팀원들이 작성한 코드를 몰래 읽어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게 조직에서 나에게 기대하는 모습이 아닌데”하는 죄책감도 들었습니다. 회사에 가는 게 점점 재미없어졌고, 조금씩 지쳐갔습니다. 어느 순간 개발에만 몰두할 수 있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해외에서는 반드시 관리자가 되지 않고도 엔지니어로 계속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다는 희망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해외 취업에 도전했고, 지금은 하루하루 감사하며 개발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개발을 시작한 지도 꽤 많은 해가 지났지만, 아직도 “오늘은 또 어떤 문제를 풀고 그 과정에서 어떤 것을 배우게 될까?”하는 설레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누군가에게는 개발을 내려놓고 한 조직에서 관리자로 계속 성장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었고, 누군가에게는 개발을 계속하기 위해서 회사와 나라까지 바꾸는 것이 정답이었습니다. 같은 출발점에 있어도 각자에게 맞는 길은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참 진부한 얘기일 수도 있지만, 저는 진로 상담이 들어올 때, 너무 유망 직종만 쫓지 마시고 꼭 좋아하시는 일을 찾으시라고 말씀드립니다. 특히 직업 불확실성이 높아진 AI 시대에는 더욱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안전해 보이는 기술도 몇 년 뒤에는 너무 당연한 기본기가 될 수 있고, 오늘 각광받는 직무도 내일은 전혀 다른 모습이 될 수 있습니다. 이미 여러 산업에서 그런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약 10년 전쯤인가요? 전 세계적으로 엔지니어 수요가 폭증하면서 개발자 처우가 급격히 좋아진 적이 있습니다. 컴퓨터 학과에 학생들이 몰리고 부트캠프 열풍이 불던 시기였습니다. 당시에 큰 흥미나 열정이 없었지만 주변에서 개발자가 앞으로 뜰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소프트웨어 개발 분야로 들어온 분들이 참 많았습니다.

물론 운 좋게도 그 선택이 잘 맞는 분들도 있지만, 계속해서 힘들어하시거나 뒤늦게 후회하시는 분들도 주변에서 정말 많이 보았습니다. 아무리 처우가 좋고 안정적인 직장이라도,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면서 매일 8시간을 보내는 것은 결국 고역이 될 수 있습니다. 일은 생각보다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싫어도 끝이 있어 잠깐 참고 하는 것과, 평생 반복하며 살아가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물론 좋아하는 일이 늘 즐거울 수는 없습니다. 때론 실망스러운 순간이 있고, 도망가고 싶은 날도 있습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일이 사라질 수도 있고, 남들이 알아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이런 역경과 고난 앞에서 다시 돌아오게 만드는 애정이 있는 일과, 처음부터 전망만 보고 선택한 일은 버티는 힘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한 번밖에 없는 인생,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기에도 짧은 인생입니다. 남들이 유망하다고 하는 일을 쫓기 전에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나답고 행복감을 느끼는지 충분히 고민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This work is licensed under CC BY 4.0CC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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